자기 자신의 발견

지난 날 학창시절 읽엇던 문학작품 가운데 가장 감명깊었던 하나만 나를 보고 말하라 하면 괴테(Goethe)의 ‘파우스트’(Faust)를 꼽으리라. 대학 1학년때이다. 철학개론을 담당한 교수가 우리에게 학생때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들을 소개 하면서 이 작품을 전하였다. 그후 소개받은 책들응ㄹ 차례대로 대충 읽어 나아갔다. 그런데 이 책은 펼쳐든 처음부터 마지막 책장을 가까스로 다 넘기기까지 이만저만한 인내심과 의무감을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그만큼 이 작품은 전개되는 무대의 시간과 공간이 방대하고 또한 등장하는 인물이 어찌나 많고 아울러 전개되는 사건들이 얼마나 복잡한지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일단 한번 읽어 보았다는 의무의 완수만으로 그 이상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재학중 군복무를 마치고 3학년에 복학했을 무렵이다. 어떤 책에서 누군가가 이 고전작품이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걸작이라는 칭찬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파우스트’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역시 이 작품은 읽어 나아가기에 다른 책들보다 대단히 방대하고 묵직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인내심이나 의무감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봄비가 대지에 스며들 듯 전적으로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현안하게 수용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슴에 꽉차는 뿌듯한 충만감이 지긋이 나를 압도했다.

새삼스럽게 지난날의 고전작품 독서 순례와 연극편력의 추억타령을 하게 된 까닭인즉 최근들어 그동안 까맣게 몰랐던 한가지 사실을 새롭게 인식한바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학작품과 연극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다 하나로 통하는 공통분모가 있었구나 하는 뜻밖의 발견이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서사적인 시각으로 모두가 하나같이 인생을 관조하고 있는 작가들의 눈이다. 파우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괴테의 눈은 현세와 내세가 동일선상에서 만나는 거시적이고 우주적인 시공간의 자으로 열려있다. 주인공을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관통하는 초일상적인 시간속으로 끌어내어 그 행동 반경이 지상에서 천상으로까지 설정된어 있다. 손톤 와일러도 ‘우리 읍내’의 남녀주인공을 현세와 현세 저련의 죽음의 세계를 동등하게 상호대비한 하나의 대단원이라는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다. 이렇듯 현세와 현세 저편의 죽음의 세계까지 동시에 한눈으로 다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아와 대상사이에 우주적인 거리의 확보가 필요하다. 이 관점의 거리를 두고 작가는 주인공들의 탄생과 성장, 일생의 살아감, 그리고 죽음이라는 인간의 일생을 마치 우리가 한폭의 풍경화를 감상하듯 그렇게 느긋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최인훈의 바보 오달과 평강공주의 설화도 시간과공간의 설정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경우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의 은하계에서 두 주인공인 생명의 별들이 윤회하는 삼세를 통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속에 함께 만남의 인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서로 다르다.

과연 사진이 나에게 뭣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가끔씩 묻는다. 결국 궁극적인 결론은 나 자신을 발견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답이다. 그리고 좋은 사진 훌륭한 사진이란 남이 아닌 바로 나다움을 찾아서 그것을 표현한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거듭해서 나 자신에게 타이른다. 그런데 바로 나다움을 발견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인가, 이제까지 나에게 상담을 청하는 학생들에게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자주 들어 왔다. 그럴때마다 내리는 처방중에 하나가 좋은 사진집들을 될 수 있는대로 많이 보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진가들이 누구인지 한 사람씩 차근차근히 확인해 나아갈 것을 당부한다.(이때의 유의사항은 가능한한 폭넓고 다양한 사진가들의 사진을 아주 많이 보는 것이 좋다는 것.)그리고는 자신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사진가들에게서 발견되는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내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동안 자신의 타고난 사진적인 채질이나 특성의 확인이나 발견을 나는 이렇듯 이른바 명작사진을 통해서 안내하여 왔다.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사진의 상담지도는 사진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어떤 예술분야이든 일단 상담자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추적해 나아가는 방법을 통해서도 가능할 것 같다. 예컨대 바로 나 자신이 문학과 연극을 통해서 스스로를 분석해 나아가듯이 말이다. 우리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은 비단 사진만은 아니다. 우리들의 감성과 생명의 뇌관을 정통으로 촉발시키는 것이라면 어떤 예술장르이든지 그것은 하나의 훌륭한 거울이다. 내면 깊숙이 잠재하고 있는 그 뭣(?)을 촉발해 내는 거울의 반사력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참고자료:사진예술 2000년 2월호>